무지하게 오랜만입니다.
원고 콘티도 하나 거의 끝나서 다행이고...
10.
아이의 반항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먹고 싶지 않다.”
세츠나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갈 무렵의 어느 저녁식사 시간, 세츠나가 숟가락을 집어던졌다. 숟가락은 정확히 티에리아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지만 얼굴 바로 앞에서 급정지, 천천히 식탁으로 내려간다. 티에리아가 흡혈귀 특유의 능력인 ‘하이드 핸드(보이지 않는 손 - 염동력과 비슷)’를 사용해 숟가락을 잡은 것이다. 세츠나는 티에리아를 응시하며 잠시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와 시선을 돌린다.
티에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식탁 위에 얌전히 내려앉은 숟가락을 보며 말한다.
“그 이유를 들어볼까.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굶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
세츠나는 잠시 식탁을 보다가 티에리아를 본다.
“요 두 달간 내가 먹은 것은 계란찜뿐이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그것이 문제다.”
그렇다.
첫 날부터 지금까지 두 달간 티에리아가 매 끼니 내놓은 음식은 계란찜뿐. -밥조차도 없었다- 물론 첫 날보다 요즘에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맛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두 달 내내 모든 끼니가 계란찜이라니. 게다가 계란찜은 세츠나가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도 너무 자주 먹으면 물리게 마련인데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면 오죽할까. 세츠나는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먹을 수 있다면 된 것 아닌가.”
“아사직전의 순간이 아니라면 그 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 않은가.”
세츠나의 대답에 티에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나는 요 200년간 매 끼니 피 이외에 먹어본 것이 없다.”
“…….”
세츠나가 조용히 땀을 흘리며 티에리아를 본다. 흡혈귀가 피 말고 대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하긴 그렇군. 피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다음번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계란찜을 만들어 보겠다.”
세츠나가 잠시 휘청거린다. 역시 티에리아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있다. 계란찜이 이제 질렸으니까 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는 것인데 또다시 계란찜을 하겠다니 이게 무슨 마이동풍이란 말인가. 세츠나는 한숨을 쉬더니 티에리아를 부른다.
“티에리아 아데.”
“뭔가.”
“나는 더 이상 계란찜이 먹고 싶지 않다. 다른 레시피를 원한다.”
“예를 들면?”
티에리아의 물음에 세츠나가 창밖을 가리킨다. 창문 너머 건너편 길목에는 핫도그를 파는 노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핫도그가 먹고 싶다. 덧붙여 콜라도.”
“기각이다!”
갑자기 티에리아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세츠나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자, 티에리아가 앗, 하더니 헛기침을 하며 조용해진다.
“그것은 인스턴트가 아닌가.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의 조언에 따르면 인스턴트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네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티에리아는 ‘왜냐하면 돈이 없어서 인간전용 건강보험에 들지 않았으니까’라는 말은 삼켰다. 이 이상 아이에게 어른의 사정을 티내고 싶지는 않다. 아이에게 자신의 보호자가 형편없다는 것을 인식시켜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아이는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한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게다가 세츠나에게 ‘무능한 보호자’라는 평을 듣고 싶지도 않다.
세츠나는 핫도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먹고 싶다.”
“몇 번이고 다시 말하게 하지 마라.”
세츠나가 고개를 푹 수그린다. 꽤나 실망한 모양이다. 티에리아는 세츠나를 보면서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건가.’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다. 여태까지 뭔가를 요구해본 적이 없던 세츠나가 처음으로 떼를 썼기 때문인가. 이제야 좀 보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조금 기쁘기는 하다. 그래, 처음이기도 하니까 조금쯤 양보해 줘도 괜찮겠지. 한 번 정도 먹은 것으로 갑자기 몸져눕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세츠나는 첫날 네 끼를 굶고도 멀쩡했었으니까 그렇게 약한 녀석은 아닐 터다. 세츠나의 첫 응석인데 이 정도 쯤이야.
“그, 그렇게 먹고 싶다면……한 번 정도는 사줄 수 있다.”
세츠나가 고개를 번쩍 든다. 뭔가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는 것 같다. 그 눈동자가 너무 눈부시다고 느낀 티에리아는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말을 잇는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다음부터 이런 일은 없다.”
괜시리 쑥쓰러워진 티에리아가 돌아서려고 하는데 세츠나가 덥석 티에리아를 끌어안는다.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가 티에리아는 뒤통수를 바닥에 찧었다. 별이 보인다.
“고맙다, 티에리아 아데!”
“에…….”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역시 티에리아는 훌륭한 흡혈귀다!”
“무,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티에리아는 ‘조금 정정하자면 훌륭한 흡혈귀 보호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라고해도 이렇게 마냥 좋아해주니 뿌듯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너무 응석을 받아주면 버릇이 나빠지니까. 세츠나가 조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들어주는 것뿐이다.
티에리아는 식탁 위에서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계란찜을 흘끗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별 수 없으니 저것은 버려야겠지. 아니면 재활용을 하던가. 아까우니 역시 나중에라도 먹을 수 있도록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물론 세츠나가 먹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계란찜을 다시 먹게 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외출이 본래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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